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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대학 중퇴자’ 꿈꾼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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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339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4-1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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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퀵플렉스대리점 「 제4회 ‘대학 중퇴자’ 꿈꾼 막노동꾼 」" 네 형편에 무슨 대학을 간다고 그러냐. 헛된 망상 품지 말고 정신 차려라. 책은 예전에 다 버려 없다. " 친구의 말본새는 예쁘지 않았다. 그는 일찌감치 상경해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포항중학교 동기 동창이었다. 중학교 시절 나와 전교 성적 최상위권을 다투던 그였다. 이미 대학에 들어갔으니 대입 수험서가 필요없어졌을 거라 생각해 그걸 빌리러 간 길이었다. 그러나 굴욕감만 가득 안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물론 친구의 말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해 고등학교도 상고 야간부를 겨우 나온 내가 대학이라니. 아마 그는 악의가 있었다기보다는 대학에 다니기 힘든 내 형편을 알고 일부러 더 모질게 말을 했을 거다. 그는 지금도 내가 가장 믿는 가까운 친구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는 사회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은 나에게 늘 깊은 신뢰와 존경을 느끼게 한다. ━ ‘대학 중퇴자’ 되기 위해 대학을 꿈꾸다 물론 서울에 올라올 때만 해도 나에게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이었다. 여전히 생존이 최우선 목표였다. 상경해보니 부모님은 당시만 해도 서울 외곽이던 이태원 빈민촌에서 살고 있었다. 이태원 시장 생선·채소 노점이 가족의 호구지책이었다. 1964년 서울 한남동 판자촌.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우리는 방이 열 칸 정도이던 벌집 같은 집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다. 미군 부대와 가까운 곳이라 다른 방에는 대부분 일명 ‘양색시’라 불리던 접대부들이 살았다. 밤마다 미군이 들락거리던 열악한 환경이었다. 나는 막노동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집안 살림에 보탰다. 자본이 없었기에 포항에서처럼 장사를 할 수는 없었다. 늘 새벽같이 일어나 청계천 6가에 있던 인력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허탕 치는 날이 많았다. 한 달에 절반은 하는 일 없이 쉬어야 했다. 그런 날은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그러다가 떠올린 게 대학 진학이었다. ‘고졸보다는 대학 중퇴가 취업에 더 도움되지 않을까’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시발점이었다. 미국으로 발송되는 기증 도서의 모습. 동아일보 1933년 10월 25일자. “우리는 사천여 년의 문화를 가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중화나 일본의 한 여류(餘流)로 인정되고 우리의 민족은 한 종 미개인의 대우를 받으며 학자들은 우리의 역사를 오전(誤傳)하고 정치가들은 우리의 문명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를 매장하여 버리려 함이 상례이다.” 1931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한인 유학생들이 중심이 돼 창립한 ‘재미조선문화회(The Korean Culture Society)’ 발기문의 일부다. 오늘날엔 한국 문화가 세계를 휩쓸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해외에서 조선인은 ‘미개인’으로 인식됐다. “조선은 세계 문명의 일대 동량이고 초석”임을 확신했던 유학생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통탄스러웠을까.이 유학생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벌인 ‘조선도서관’ 설립 운동의 실상이 밝혀졌다. 컬럼비아대 소장 문서 등을 조사한 이혜은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서지학연구’에 실린 논문 ‘1930년대 미국 유학생 단체 在美朝鮮文化會(재미조선문화회)의 도서관 운동’에서 “오늘날 북미 한국학 연구의 중심 기관이 된 컬럼비아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도서관의 뿌리에 이 유학생들이 벌인 도서관 설립 운동이 있다”고 밝혔다.논문에 따르면 재미조선문화회 활동의 중심이 된 건 뒷날 미군정청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1900~1979)이었다. 이 대학에서 공부 중이던 그는 총장에게 조선도서관의 설치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 임시 공간을 배정받았다.문제는 장서였다. 대학 주요 도서관인 ‘세스 로 도서관’ 건물의 넓은 방을 차지하기 위해선 다양한 장서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정부가 기증한 장서가 적지 않았다. 중국은 1902년 ‘고금도서집성’ 5044권을, 일본은 1927년 5000권을 기증한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 청년들은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재미조선문화회는 초기 300~1000책 규모의 쿠팡퀵플렉스대리점